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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입니다/희망칼럼

[산티아고 일기]1장 - 파리

2008 . 5 . 26 (월)

이틀 전 파리(Paris)

06 :40 기상, 아들 규찬이는 MP3 플레이어에 음악을 넣고있고, 어머니는 총각김치를 넣은 김밥을 말고 계셨다.

08 :20 MP3에 쫓겨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학교 가는 규찬이에게 미안하다. 한 번 안아주지도 못했다. 출국 전에 문자로 대신 인사했다, 잘 지내라고!

09 :10 아내는 망설이다가 출근한다. 한 번 안아주었는데현관문을 나서자 그만 글썽거리던 눈물을 떨구었다. 뒷모습이 슬펐다.

09 :30 뭔가 먼 길 떠나는 아들에게서 풍겨진 슬픔 때문일까? 어머니는 시종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으시다. 식탁 앞에 앉았는데 MP3에 내게 전해 줄 음악을 다운로드하는 규찬에게‘ 또 저 짓이다’고,‘ 형에게 말은 하고 가느냐?’고,‘어미가 싫으면 형도 싫으냐? ’고 하신다. 형에게 전화하겠으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라 했다.

09 :40 샤워하고 보름 전부터 준비한 옷을 입었다. 세 번이상 다시 싸고 또 쌌던 짐들이다.

10 :00 종윤에게서 전화다. 집 앞에 도착했단다. 어머니께C a m i n o d e S a n t i a g o24 | 제1장 파리야고보서62년경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쓴 신약성서 공동서신 중의 한 책. 편지의형식을 띤 교훈적 내용을담은 권고문.절하며 인사하려다 그러면 울 것 같아 그냥 묵례만 하고 돌아섰다. 그래도 또 슬프다. 그러나 내친 길, 거침없이 가련다.강해지려 가는 길이기도 하다. 새 날 아닌가? 새해의 첫 날도, 새로운 출발의 날도 아니지만 모든 것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의식의 날들이, 나만의 번제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내가 해야만 한다.

11:10 공항에 도착했다. 줄을 서서 체크인을 하면서 국회의원 이인영이 일반인 이인영씨로 돌아간다. 30분이나 걸렸다. 570유로를 환전했는데, 환율이 1708원이나 한다. 꽤 비싸다. 종윤이는 옆에서 마일리지를 체크하고 환전한 후 로밍폰을 임대했다.

12 :00 출국 수속에 20분이 걸렸다. KAL 라운지에서 기다리며 간단히 요기를 했다.

13 :15 비행기에 탑승했다. 종윤이는 그 사이에 담배를 사왔다.13 :27 아내와 어머니께 전화했다. 정말 잘 다녀오겠다고했다. 여기까지 총 2912보를 걸었다.

14 :00 야고보서 (1 .2 )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cf. 두 번 읽었다.(1 .6 )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 합니다.(1 .12 )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19 :00 파리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이다. 시차가 꽤 난다. 입국 절차가 따로 없다. 까탈스런 미국과 파리는 많이 다르다.

20 :20 식당에 도착하니 한공사님이 나와 계신다. 박영선의원이 맺어준 인연이다. 친동생처럼 챙겨준 마음이 고맙다.그래서 누님이라 서슴없이 부른다. 새로운 시작은 있었는데‘국회의원’ 이인영의 흔적이 공사님을 통해 남아있다. 아마내일 오후부터는 없어질 것이다.

22 :20 호텔에서 체크인을 한 후 에펠탑 주변의 야경을 잠시 즐겼다.

24 :00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은 모두 7545보 걸었다. 만보기는 180 kcal를 소모하고, 47.5 g이 빠졌으며, 2 km 거리를, 41분간 걸은 것으로 되어있다.

1.
1987년 총학생회장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그동안 줄곧 학생운동을 해왔노라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형에게 전화로“ 당장 휴학계대신 내고 고향 충주로 가져오라” 호통 치셨다. 그때 어머니는 옆에서바라보며 애만 끓이셨다.“아버지, 그러셔도 날이 새면 저는 가야합니다. 또 하나의 부모님을찾아 조국을 향해 저는 가야 합니다.”그렇게 말씀 드렸지만, 그날 밤 부모님 곁에서 잠을 자며 말없이 속으로 참 많이 아파했다. 눈물을 삼켰다.‘어머니! 오늘도 꼭 그날 같지만 좀 다르네요. 오늘은 오래 미루었던저만의 번제, 제가 짊어져야 할 번제를 위해 갑니다. 걱정하지 마시구요. 잘 하고 오겠습니다. 더 맑아진 그래서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내 마음 속의 인사였지만 가슴이 저리다.국회의원하고 정치하면서, 나는 학생운동하고 사회운동하던 시절 내가 가진 좋은 덕성을 많이 잃어버렸다. 좋은 형, 넉넉한 선배, 겸손한후배, 섬기고 품는 마음과 행실, 남 탓하지 않고 내가 새기고 또 새기던 일 등. 그러나 어느새 나로 인해 상처받고, 섭섭해지고, 때로는 욕해야 하는 후배, 동료 그리고 유권자들이 많아졌다. 더 늦기 전에 내몸과 정신에서 토해내야하고 태워버려야 한다.내가 표독해진 이유가 초심을 지키기 위한 발악, 발버둥 같은 것이었다던 그 변설(변명)의 진정성을 위해서라도 더 늦추어서는 안 된다.내가 조금 출세하고 있었을 때, 나의 손길을 기다렸던 그들을 돌보지 못하고 돌볼 수 없었던 나를 또 그들은 얼마나 원망했을까?민주화 세력의 정통성이 어설프게 뿌리 뽑혀 나가고 있을 때, 나는나를 불살라 저항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민심이 잠시겠지만 아주 거칠게 떠났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내 짐이다.

2 .
야고보서를 읽고 그 가치를 다시 발견했다. 차별하지 말 것과 행(行)함을 중시할 것 등이 가슴에 남았다. 멀리 떠나서, 그래서 떨어져서살펴보는 여유가 주는 힘일까? 꼭 혁명가의 서신 같다. 앞으로 이 길을 걸으면서 나는 또 몇 번이나 야고보서를 읽게 될 것인가?이 길이 야고보의 길이기도 했지만 내가 읽는 야고보서가 내 마음의 길과 맞닿고 있음이 더 감사하다.집을 나서며 단 한권 들고 나선 책은 성경이었다. 이 길 내내 성경책만을 읽을 작정이었다. 처음 구속되었을 때 구치소로 가기 전 경찰서유치장부터 내 손에 유일하게 쥐어진 책도 오직 성경이었다.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면서 읽어나갈 것이다. 이 길에서 또는 꿈길에서라도 하나님을 만나고싶다. 어떤 시련과 고난을 만나도 감사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하게 하기 위한 단련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야고보서의 처음처럼 위로가 되는 첫 출발이다. 야고보의 길을 걸으며, 야고보서를 읽고, 그 첫 부분부터 성경 말씀은 내게 위로로찾아왔다.